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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인물열전] 아히야…야훼 신앙으로 왕권에 도전한 선지자

이스라엘이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분단되어 분열왕국 시대로 접어들 무렵 무명에 가까운 한 선지자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 솔로몬의 정략결혼은 후궁들과 첩들이 가져온 온갖 이방신들로 왕궁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전역을 이교신앙(異敎信仰)으로 물들게 했다. 온갖 건축공사에 드는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솔로몬이 부과한 지나친 과세와 악정(惡政)으로 인하여 백성들의 원성은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혼탁한 시기에 종교혼합주의를 배척하고 순수한 야훼신앙을 고수한 선지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아히야였다. 아히야는 솔로몬의 죄악에 대한 임박한 심판을 예언하였는데 그는 실로의 제사장 가문 출신의 선지자였다. 실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던 초기 시대부터 이스라엘 역사와 종교의 센터였고 정치와 군사의 중심지였다. 오래전부터 실로는 법궤가 있던 중앙 성소의 역할을 담당해 왔기에 야훼종교의 중심지였던 셈이다. 철저한 야훼신앙을 고수한 아히야는 솔로몬의 반(反) 야훼적 신앙과 통치로 인해 솔로몬 왕국의 뿌리에 놓인 하나님의 심판의 도끼를 보았다. 솔로몬이 벌인 공사의 감독관이었던 여로보암을 만난 아히야는 자신이 입고 있던 새 옷을 벗어 열 두 조각으로 찢으며 여로보암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너는 열 조각을 가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나라를 솔로몬의 손에서 찢어 빼앗아 열 지파를 네게 주고 오직 내 종 다윗을 위하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한 성읍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만은 솔로몬이 다스리도록 남겨 주겠다." 아히야는 여로보암이 장차 분열 이스라엘 왕국의 초대 왕이 될 것을 예언했다. 여전히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던 솔로몬 통치시절에 왕국의 심판과 새로운 왕의 탄생을 예언한 아히야는 대단한 배포를 지닌 선지자라 아니할 수 없다. "사람의 행위를 따라 갚으사 각각 그의 행위대로 받게 하시는"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의 메시지는 그대로 이루어졌다. 이후 솔로몬까지 3대째 내려온 통일 왕국은 아히야의 예언대로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로 분열되었으니 야훼를 떠난 지도자의 실정(失政)이 낳은 참담한 결과였다. 솔로몬의 실정으로 왕에 등극한 여로보암은 종교적 정통성을 획득하기 위하여 남 왕국 유다의 예루살렘 성전에 대응할 새 예배 처소를 만들었다. 그 예배 처소에 여로보암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세웠다. 여로보암은 북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를 드리러 예루살렘 성전에 가는 것을 막으려는 정치적 목적 때문에 야훼신앙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정책을 시행했다. 우상을 만들지 말고 목상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라는 야훼의 명령을 무시한 채 금송아지 상을 만들었고 자기 임의대로 레위인 아닌 자로 제사장까지 삼았으니 솔로몬 실정의 재판(再版)이 아니던가? 오히려 솔로몬보다 더 악행을 자행했으니 아히야는 여로보암과 북 이스라엘 왕국의 역사에 심판을 선언하였다. "여호와께서 여로보암의 죄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을 버리시리니 이는 그도 범죄하고 이스라엘로 범죄하게 하였음이니라" 아히야 선지자는 장차 200년 후에 일어날 이스라엘의 파멸을 예고하고 있으니 야훼 신앙의 '중심/과녁'을 벗어난 죄('죄'는 헬라어로는 '하마르티아'로 그 뜻은 '과녁을 벗어나다'이다.)의 결과는 이스라엘 역사의 탈선과 파멸이었다. 슈펭글러와 토인비는 "역사는 돌고 돈다"고 했다. 죄로 물든 역사의 악순환 속에서 궁극적 희망은 밑둥치 잘리고서 그루터기만 남은 인간 역사에 여전히 새 싹을 틔우시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긍휼이 아니던가?

2011-05-24

[성서인물열전] 가인…제사의 첫 단추를 잘못 낀 악인

어릴 적 부모의 사랑을 놓고 형제간에 서로 시기하고 다툼을 한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법하다. 부모의 사랑을 더 차지하기 위해 형제간에 나타나는 심리적 갈등이나 적대감을 '가인 콤플렉스(Cain Complex)'라 한다. '가인 콤플렉스'는 구약성서의 창세기에 묘사된 아담의 아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시기하여 죽인데서 유래하였다. 인류 역사 속에서 최초의 살인이 형제가 형제를 죽이는 살인이었으니 원수는 가까이에 있는 법인가? 프랭크 설로웨이(Frank J. Sulloway) 박사는 1997년 출간한 그의 저서 '타고난 반항아'(원제: Born to Rebel)에서 역사의 동력은 마르크스의 계급갈등이나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아닌 가족 안의 제한된 자원을 둘러싼 자녀들의 경쟁이라는 매우 논쟁적인 주장을 하였다. 설로웨이 박사는 가정 내에서 맏이들이 가족 내의 자원 특히 부모의 사랑을 선점하면서 가족 안에서의 불공평이 빚어지고 이런 감정이 '후순위 출생자'(동생)들을 반항적 기질로 이끈다고 하였다. 맏이는 권력과 권위를 더 가깝게 받아들이고 자기주장이 강하며 지배적이고 공격적이고 야심적이고 질투가 많고 보수적인 반면 그보다 어린 형제자매들은 기존 질서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항적 기질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일은 '부모의 사랑'이 아닌 '하나님의 사랑'을 차지하려는 극한 시기심이 빚은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을 낳는다. 이런 점에서 인간의 원죄는 그 나무의 실과를 따먹음으로써 하나님같이 되려는 인간의 '탐욕'이 아니던가? 이 탐욕의 바이러스는 아담의 다음 대에도 그대로 대물림되었으니 그 탐욕의 결과는 형제살인이었다. 그 살인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가인은 자라서 땅을 경작하는 농부가 되었고 아벨은 자라서 양을 치는 목자가 되었다. 세월이 흘러 가인은 땅의 소출로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하나님께 제물을 바쳤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은 받으셨지만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 이 일로 몹시 분이 난 채 얼굴을 떨어뜨린 가인을 하나님은 꾸짖으셨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하나님이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신 이유는 그가 바친 '제물'의 문제가 아닌 '마음'의 문제였다. 제사 드리는 가인의 마음에 불순한 의도가 있었기에 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것이다. 그리고서 가인은 아벨을 들로 유인하여 살해하였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가인은 뻔뻔한 목소리로 답하였다. "모릅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다시 하나님이 가인에게 말씀하신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제한된 부모의 사랑이 아닌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을 놓고서 아우 아벨과 경쟁하고 결국 그를 살해한 가인의 처사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크게 잘못 이해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누군가만 차지하는 '독과점 품목'과 같은 것이 아니지 않은가? 가인은 제사와 예배의 ABC도 모른 채 그 첫 단추를 잘못 낀 악인이었다. 그런 잘못을 범하는 모든 이들이 실은 '가인의 후예'인 셈이다.

2011-05-17

[성서인물열전] 아나니아와 삽비라…부정으로 인생무대에서 내려온 부부

'초대교회로 돌아가자!' 이 구호는 현대 크리스천들에게 약 2000년이라는 시간적 공백을 넘어 자칫 그 시절로 되돌아가자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이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이렇게 구호를 바꾸면 어떨까? '초대교회의 정신과 에토스로 돌아가자!'. 초대교회는 예수의 정신을 이어받아 기독교 정신과 운동을 태동시킨 현장이었다. 법과 군사력과 사회하부구조(인프라)를 구축하여 당시 가장 강력한 제국으로 부상한 로마제국의 통치를 받던 시기에 교회는 제국의 변방 예루살렘에서 그 시작을 알렸다. 그렇게 시작된 복음 운동은 한 세대가 지나지 않아 로마 제국의 심장부까지 진출하였다. 초대교회의 부흥은 가속화되었고 세계종교로 서서히 부상하였다. 그러한 부흥과 성장의 동력은 무엇이었는가? 그리고 그 동력의 에너지원이라 할 수 있는 정신과 에토스는 무엇이었던가? 초대교회를 이야기 할 때 빼먹지 않고 회자되는 것 가운데 하나는 순수한 '나눔'과 '봉사'의 실천이었다. '헌금'의 용도는 가진 성도들이 자신들의 물질을 교회 안팎의 가난한 이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것이었다. 무명의 복음전도자들에 대한 따뜻한 '접대' 또한 그러한 나눔과 섬김의 실천이었다. 경제적 나눔은 신적 사랑과 은혜로 이전의 삶에서 떠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 이들이 그 사랑을 다른 이들에게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이러한 아름다운 경제적 나눔의 실천이 시행되고 있던 어느 날 한 부부가 비명횡사하는 뜻밖의 일이 발생하였다. 그들은 아나니아와 그의 아내 삽비라였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소유하고 있던 땅을 판 후에 그 돈의 일부를 감추어 둔 채 나머지를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 이렇게 하여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신들이 소유한 토지의 사용 및 처분 권한을 사도들에게 위임하였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들이 성령을 속였다고 지적하였다. 그리고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순으로 생명을 잃게 되는 비극적인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비록 바깥의 곱지 않은 시선과 박해를 받고 있었지만 아름다운 성장을 하고 있던 초대교회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가? 아마도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서원하였던 듯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토지를 판 후 그 돈의 일부를 숨기지는 않았을 터. 과연 그들의 서원은 순수한 동기에서 이루어졌던가?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이전에 자신들보다 더 큰 규모의 땅을 팔아 그 돈을 사도 앞에 쾌척한 바나바를 보고서 교회 회중들로부터 그렇게 인정받고 싶어 한 것은 아니었을까? 일단 서원하였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것임을 그들은 잊어버린 것인가?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구약성서의 아간 사건과 흡사하다. 가나안 땅으로 진입하기 전 여리고 성에서 탈취한 모든 전리품을 불살라 버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서 그 가운데 일부를 자신의 텐트 안에 숨겨 둔 죄로 그의 가족과 함께 죽임을 당한 아간의 이야기는 초대교회에서 발생한 이 사건과 흡사하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하는데 여전히 낡은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으려 한다면 여러 조각으로 기운 그 헌 가죽 부대는 결국 그 안에 든 포도주의 발효로 인하여 부풀어 올라 터지고 말 것이다. 아간의 이야기는 새 땅인 가나안의 진입을 앞둔 이스라엘 민족을 일깨우는 이야기이듯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부정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새 시대를 맞이한 초대교회와 그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교회를 일깨우는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거룩하고 엄중한 요청 말이다.

2011-05-10

[성서인물열전] 발람, 나귀가 깨우친 표리부동한 선지자

'표리부동(表裏不同)'이라는 말이 있다. 마음이 음흉하고 불량하여 겉과 속이 다름을 뜻한다. 이러한 행태의 사람을 우리는 흔히 '능구렁이 같은 사람'이라고 부른다. 능구렁이는 화려한 색깔을 지닌 무독(無毒)의 움직임이 느린 뱀이지만 한 번 건드리거나 개구리를 잡아먹을 때면 아주 맹렬한 기세로 덤벼드는 그런 속성이 있다. 평소 겉으로는 아주 부드럽고 편안하게 보이는 자가 속으로는 아주 교활하여 목표가 눈앞에 보이면 자신의 정체를 철저히 숨기고 접근하는 교활한 사람을 두고 '능구렁이 같다'고 한다. 성서 속에서 이런 능구렁이 같은 사람의 예를 하나 들라고 한다면 단연 발람이 아니겠는가? 발람은 유프라테스 강변에 있는 메소포타미아 부돌 지방 사람으로 술사(術士)였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승승장구하면서 가나안 땅에 진입하려 할 때 모압 왕 발락은 이스라엘 군대의 위력을 익히 들어온 터라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그래서 발락이 이스라엘을 물리치기 위해 내놓은 꾀는 무력전이 아닌 선지자의 기도의 힘을 빌리는 것이었다. 고대 국가는 그들만이 섬기던 신이 있는지라 국가 간 전쟁은 신들끼리의 전쟁이기도 했다. 트로이와 그리스 연합군 사이의 10여 년간의 전쟁을 다룬 일리아드(Iliad)에는 각 나라를 지지하는 신들 사이에도 불꽃 튀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따라서 고대인들에게는 신에게 바치는 기도와 제사가 창과 칼보다도 더 강력한 무기였던 셈이었다. 발락의 코앞까지 왔던 이스라엘은 이미 아모리 족속과의 싸움에서 이겼다. 즉 이스라엘의 야훼 하나님이 아모리의 신을 눌렀다는 의미이겠다. 이 사실을 알고 있던 발락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하여 취한 방법은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저주를 선포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발락은 발람에게 예물을 주어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저주토록 하려는 계략을 세웠다. 하나님의 지시로 발락의 요구를 일언지하에 거절하였지만 더 나은 조건으로 발락이 사람들을 보내어 재차 요청했을 때 발람은 그들에게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고 큰 소리쳤다. 그러나 그의 호언장담이 진심이 아닌 것으로 판명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뇌물에 눈 먼 발람은 그 다음날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해 길을 떠났다가 황당한 일을 경험하였다. 타고 가던 나귀가 좌우로 작은 담벼락이 난 길에서 옆으로 비키려고 심하게 몸부림치는 것이 아닌가? 바로 앞 가까이에 칼을 들고 서 있는 하나님의 사자를 본 까닭이었다. 그 바람에 발람은 발을 다치게 됐다. 화가 난 발람은 나귀에게 채찍질을 가하자 나귀가 말을 하면서 돈에 눈 먼 발람을 깨우쳤다. 그제야 영안이 열린 발람은 그 사자가 크게 꾸짖는 소리를 듣는다. "나귀가 만일 돌이켜 나를 피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벌써 너를 죽이고 나귀는 살렸으리라." 모골이 송연한 경험을 한 발람은 사자의 지시를 받고서 발락에게 갔다. 발람의 출현으로 크게 기뻐한 발락은 그를 산으로 데려가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요청하였지만 정작 발람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저주가 아닌 축복이었다. 나아가 발람은 오히려 이스라엘을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물질과 출세에 눈이 멀어 한순간 하나님의 뜻에서 돌아서려 한 발람. 그 발람을 하나님은 한낱 미물인 나귀를 통해 깨우치셨으니 미물보다 못한 발람의 형편이 나와 별반 차이가 없는 듯 하여 왠지 씁쓸하다.

2011-05-03

[성서인물열전] 라멕, 최초의 살인자인 가인의 판박이 손자

폭력과 살인을 서슴지 않는 인면수심의 행태를 유발케 하는 것은 환경적 요인인가 아니면 유전적 요인인가? 환경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겠지만 유전적 요인이 폭력의 대물림에 한 몫 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일명 '전사 유전자(warrior gene)'라고 불리는 MAOA(모노아민 산화효소) 유전자가 있다고 한다. 이 유전자는 기분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신경 전달물질의 분비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MAOA의 활성도와 변이에 따라 폭력성의 정도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사 유전자'를 물려받았는지 살인을 자행하고도 그것을 무용담 삼아 보란 듯이 자랑하는 이가 있었다. 그는 인류 최초로 살인을 자행한 가인의 7대손인 라멕이었다. 라멕은 일부다처제를 최초로 시행하여 두 아내를 두었는데 그 둘 앞에서 무슨 대단한 일을 치루고 돌아온 개선장군마냥 다음과 같은 끔찍한 노래를 흥얼거렸다 한다. "아다와 씰라여 내 목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상처로 말미암아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으로 말미암아 소년을 죽였도다." 내용인즉 나이 어린 소년이 어쩌다가 라멕에게 상처를 입혔는데 그것에 대한 보복으로 라멕은 그 소년을 가차없이 죽였다는 것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암흑가의 잔혹한 보스처럼 나를 건드리는 놈은 몇 배로 되갚아 주겠다고 하는 무자비한 복수의 선언이었다. 이 노래는 일명 '라멕의 검가(劍歌)'라고 하는데 가인의 살인 이후 에덴의 동쪽에서 폭력과 살인이 시도 때도 없이 자행되고 대물림되고 있음을 노래는 은연중 보여주고 있다. 피를 부른 복수를 자랑하듯 라멕은 자신의 선조인 가인과 비교하여 자만심에 가득 찬 어조로 폭력을 노래하였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 아우를 죽인 가인이 자신이 저지른 엄청난 죄악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두려워 할 때 하나님은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는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를 보호하는 표를 주셨다. 살인한 가인이 죄에 대한 대가는 치르게 하되 반복되는 복수로부터 보호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선포였다. 힘없는 소년을 살해한 라멕은 자신을 상하게 하는 자는 벌을 칠십칠 배를 받는다고 하나님 대신 자기 스스로 선포하고 있으니 이런 망발이 어디 있겠는가? 더군다나 라멕은 자신이 저지른 죄악에 대한 처벌을 면하기 위해 스스로 '아전인수' 격으로 하나님의 자비의 선포를 오용하려 한 파렴치한이었다. 힘을 숭배하는 폭력주의자 라멕은 그의 두 아내 사이에서 세 아들을 낳았다. 야발은 목축업을 유발은 예술을 두발가인은 철기문화를 보급함으로써 인류문명의 창시자들이 되었다. 최초의 도시문명을 건설한 최초의 살인자 가인 소년을 죽이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는 커녕 자랑삼아 떠벌렸던 가인의 7대손 라멕 그리고 동철로 각종 날카로운 기구를 만든 라멕의 아들 두발가인 모두 하나님을 떠난 이기적 문명과 야만적 사상을 이 땅에 가져온 인물들이 아닌가? 문명은 본디 두 얼굴을 지닌 야누스였다. 문명의 또 다른 얼굴은 야만이다. 문명이 인간의 힘을 절대시하는 이들의 손에서 놀아날 때 인류역사는 피로 물든 야만의 역사로 돌변하였다. 가인의 판박이였던 라멕과 같이 힘을 신봉하고 폭력과 살인을 조장하는 야만의 역사를 근절시키는 것은 우리 모든 인류의 최대 과제가 아니겠는가?

2011-04-26

[성서인물열전] 드루실라, 용암 속에 매몰된 절세의 미인

주후 79년 8월 24일 무덥던 여름 오후 로마제국의 도시 폼페이는 용암에 뒤덮혔다.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면서 도시 전체와 2만여 명의 주민이 용암과 화산재에 파묻혀 사라졌다. 비운의 역사는 도시의 마지막이 되었다.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위락시설로 로마 귀족들 사이에서 인기 높은 리조트 도시가 한순간에 초토화될 때 흘러내리는 용암 속에 매몰된 성서의 여인이 있었다. 이 여인의 비극적 죽음은 그녀의 자유분방하고 화려한 이력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그녀의 이름은 드루실라였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의 기록에 따르면 드루실라는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 사도를 살해한 후(주후 44년) 비명횡사한 헤롯 아그립바 1세의 막내딸이자 아그립바 2세의 누이였다. 아버지 헤롯 아그립바 1세가 죽었을 때 드루실라의 나이는 불과 여섯 살이었다. 다른 자매들에 비해 용모에 출중했던 드루실라는 여섯 살 나이에 부친에 의해 동부 소아시아(지금의 터키)에 위치한 코마게네(Commagene) 태자 에비파네스라는 사람과 약혼하였지만 그가 유대교 입교를 거부하므로 파혼당하고 만다. 드루실라가 16세 되던 해 아그립바 2세는 그녀를 수리아의 작은 분봉국이었던 에메사(Emesa)의 아지스(Azizus) 왕에게 시집을 보내었다. 드루실라는 결혼한 지 일 년 후 그녀의 미모에 매혹된 유대의 총독 벨릭스의 꾐에 빠져 유대의 율법을 무시하고 남편 아지스와 이혼하고 벨릭스의 세 번째 아내가 되었다. 노예출신이었던 벨릭스는 자유민의 신분을 얻어 유대 총독자리에까지 오른 전형적인 권력지향적인 야심가로서 자신의 눈에 거슬리는 이들이면 누구나 제거하였던 잔인한 인물이었으며 뇌물과 여자를 탐하였던 탐욕스런 인물이었다. 부창부수라 했던가 세 번씩이나 부당하게 이혼한 경력의 소유자였던 드루실라는 세 번째 남편인 벨릭스 못지않게 권력을 탐하는 여인이었던 것 같다. 벨릭스가 유대지역 총독으로 있을 때 바울은 유대인들의 고소로 체포되어 가이사랴 빌립보로 이송되어 그곳에서 그를 대면하게 되었다. 그 때 드루실라는 새로운 종교의 전도자인 바울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듣고자 하였다. 드루실라가 바울을 심문하는 법정에 남편인 벨릭스와 함께 나왔을 때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에 관하여 바울이 설파하는 강론을 듣고서 그 두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내심 두려워하면서 양심의 찔림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죄와 부정으로 찌들대로 찌든 자신의 과거가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그것을 뉘우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이 드러날까 봐 일말의 양심의 가책마저 짓밟아 버렸을 것이다. 결국 드루실라는 바울의 설교를 가로막고서 바울을 감옥으로 돌려보내고 말았다. 바울이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을 돕기 위하여 이방교회로부터 모금한 돈을 들고 왔다는 사실을 안 벨릭스는 은근히 그로부터 뇌물을 기대했지만 바울은 전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 이후 벨릭스의 학정에 신물이 난 유대인들이 그의 부정과 부패를 당시 로마황제였던 네로에게 고소하였고 이로써 그의 정치 생명도 끝장나고 말았다. 간신히 형벌은 면하였지만 베수비오로 추방된 벨릭스와 함께 드루실라는 그곳에서 머물다가 화산의 폭발로 흘러내린 용암 아래 결국 그녀의 아들과 함께 매몰되고 말았다. 절세의 미인이었지만 방자하고 권력지향적이었던 드루실라는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채 그녀는 자신의 죄악과 함께 굳어진 용암 속에 영원히 박제되고 말았다.

2011-04-19

[성서인물열전] 나아만…한센병 걸린 적국의 군장관

고대로부터 나병(국제적 표기는 한센병)은 하늘이 내린 형벌 즉 천형이라 하였다. 이러한 천형의 병고를 구슬프게 노래한 나병 시인 한하운의 시 '소록도로 가는 길에'의 몇 구절을 인용해 본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 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중략)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신발겸용버선)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 길." 일단 나병에 걸리면 얼굴과 손 발 등 외부로 노출된 거의 모든 부분이 썩어 들어가기 때문에 예로부터 나환자들은 경계와 공포의 대상이었다. 이 치명적인 병에 걸려 고통당한 이가 있었다. 구약시대 오랜 기간 동안 이스라엘의 인근국가이자 적국이었던 아람국 군대장관인 나아만이 그이다. 아람 사람들은 셈족으로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에 작은 도시 국가를 이루며 널리 퍼져 살았다. 다윗과 솔로몬시대까지만 해도 아람은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치던 약체국가였다. 그러다가 남북왕국으로 분열된 이후 이스라엘의 국력이 급속히 약해진 틈을 타 아람은 세력 확장을 꾀하였다. 아람은 북 왕국 이스라엘의 변방지역을 자주 침입함으로써 그 둘 사이의 적대감정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아람의 벤하닷 왕은 북 왕국 이스라엘을 공격하기도 하였다. 북 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과 더불어 아람국을 침공하였는데 그 때 아람의 나아만이 아합 왕에게 활을 쏘아 치명상을 입혀 결국 그를 죽게 하였다. 그런 점에서 나아만은 민족을 위기에서 구한 아람의 전쟁영웅이자 공신이었지만 이스라엘 입장에서는 원수였던 셈이다. 그러나 나아만은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불치의 병에 걸려 고통당해야 했다. 나균이 퍼져나가는 그의 몸은 점점 썩어가면서 흉물스럽게 변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스라엘 땅에서 전쟁 중에 잡아온 계집종은 나아만에게 북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사를 소개해 준다. 서로 견원지간인 채 으르렁대는 북 이스라엘과 아람의 당시 상황을 고려하면 한 국가의 군대장관이 적성국가의 일개 선지자를 방문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군대장관이라 한들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생명을 놓고 저울질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을 심산이었을까 한 여종의 귀띔으로 나아만은 치료자에게 사의(謝意)를 표하기 위한 두둑한 선물과 함께 발길을 급히 이스라엘로 향하였다. 나아만이 이스라엘을 급작스럽게 방문하자 북 이스라엘 왕 여호람은 그가 북 왕국을 칠 빌미를 잡으러 온 줄로 알고 혼비백산했다 한다. 나아만의 방문을 받은 엘리사는 그와 그가 가져온 선물은 거들떠보지도 않고서 방안에서 사환을 보내어 그에게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명령하였다. 엘리사의 푸대접과 당황스런 치료방법에 순간 분노가 치밀어 돌아가려 하였지만 동행한 종들의 만류로 나아만은 꾹 참고서 그의 지시대로 행하였다. 순종과 믿음은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쌍두마차와 같다. 믿는 사람만이 순종할 수 있고 순종하는 사람만이 믿을 수 있지 않은가? 기적은 일어났다. 나아만의 몸 구석구석 썩어 문드러진 흉물스런 흔적들은 말끔히 사라졌다. 아마도 이것이 적군이라도 부상당하면 치료해 준 최초의 인도주의적 행위가 아닌가 싶다. 그 이후 나아만은 북 왕국을 공격하지 않았다. 한솥밥 먹다가도 깨지면 철천지원수가 되는 세태에 원수까지도 포용하는 엘리사의 통 큰 행보와 나아만의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보은하는 자세가 봄바람보다 더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한다.

2011-04-12

[성서인물열전] 바라바, 레지스탕스 운동을 이끈 유대지도자

김동리의 소설 '사반의 십자가'에는 로마제국의 폭정시대에 현실인식과 삶의 궤적이 다른 두 인물이 등장한다. 로마제국 치하에서 신음하는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 나라 복음을 외치면서 신정(神政)에 근거한 비폭력운동의 이상적인 가치관을 지닌 예수님과 유혈투쟁을 통해 로마제국을 몰아내고 야훼를 믿는 유대공동체를 건설하려한 현실적인 가치관을 지닌 사반이다. 이 소설에서 김동리는 신약성서의 내용을 얼개 삼아 사반이라는 허구적 인물을 등장시키고 상상력을 가미하여 참된 인간 구원과 휴머니즘을 화두로 삼았다. 그는 현실과 이상 현세와 초월세계 지상왕국과 하늘왕국의 대조를 통해 무엇이 진정한 구원인지를 묻고 있다. 결국 사반과 예수님은 어떤 합의점도 찾지 못한 채 같은 날 십자가에 달리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로마의 학정으로부터 무력투쟁이라는 방법으로 민족을 구하려 한 혈맹단(血盟團)의 두목인 사반은 복음서의 바라바를 연상케 한다. 이 바라바라는 인물은 1951년 스웨덴의 작가인 페르 라게르크비스트가 쓴 소설 '바라바'에 의해 창조적으로 입체화된다.〔〈【 이 작품은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과 노벨문학상을 안겨다 주었고 영화로도 제작되어 보는 이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기도 하였다. 이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예수 대신 유월절 특사로 방면된 도적 바라바는 해방과 자유를 얻었으나 나사렛 출신 예수가 왜 자기 대신 십자가를 지고 죽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바라바는 도적질과 폭력으로 점철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갔지만 이상하게도 잘 적응하지 못하였다. 그는 다시 체포되어 종신토록 해야 하는 광산 노역을 선고받았다. 바라바는 광산에서 기독교도인 사하크를 만났고 둘은 이내 친구가 되었다. 바라바는 광산에서 20년을 일하며 죽음을 선고받았을 때의 고통과 예수의 희생에 대한 기억으로 번뇌하였다. 광산이 매몰될 때 그 둘은 살아남아 로마의 콜로세움으로 가게 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신약성서의 복음서에서 바라바는 도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바라바를 폭동의 주모자이자 살인자로 언급해 놓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로마제국에 대항하여 무력으로 투쟁한 지도자였던 것이 분명하다. 추측컨대 열심당이라는 유대의 한 파당을 이끈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한 지도자였으리라. 외세인 로마의 군홧발에 짓이겨진 팔레스타인의 땅과 빼앗긴 주권을 레지스탕스 운동을 통해 회복하고 그들을 무력으로 쫓아내는 것이 열심당의 행동강령이었다. 결국 로마의 권력에 의해 사로잡힌 그는 빌라도의 옥에 수감되었다. 당시 유대의 풍속을 따라 무리의 청원대로 유월절에 죄수들 가운데 한 사람을 석방하는 전례가 있었다. 그 전례에 따라 바라바는 예수님과 같은 재판장에 서게 되었다. 이때 로마 총독 빌라도는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라고 물으면서 양자택일을 종용한다. 이때 민중들은 현실참여적인 무력항쟁을 펼쳐온 민족주의자 바라바를 석방해달라고 외치자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함을 알았지만 정치적 판단을 하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바라바는 석방되었고 예수님은 두 명의 강도와 함께 십자가형을 당하였다. 그로부터 36년 후 열심당원들의 무력항쟁은 제 1차 유대-로마 전쟁(주후 66~73년)의 도화선이 되었고 팔레스타인 전역과 예루살렘성과 성전은 그 전쟁의 여파로 막강한 로마의 군사력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었다.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110만명이 이 전쟁 기간 동안 사망하였고 9만7000명이 붙잡혀 노예로 팔려나갔다고 한다. 누가 냉정한 현실인식을 하였던가? 예수님인가 바라바인가? 폭력과 전쟁의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바라바와 예수라는 두 선택의 갈림길에 늘 서있다.

2011-04-05

[성서인물열전] 훌다, 종교개혁의 어머니

여성들의 진출이 여러 방면에서 현저히 증가하면서 21세기를 '여성의 시대'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 감성과 창조력 섬세함과 설득력으로 무장한 여성들이 모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현대와는 달리 고대 사회는 남성들의 독무대였다. 당시 유대인 남성의 기도문에는 이방인과 노예와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이 있다. 여성들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짙게 배인 사회상을 엿볼 수 있다. 역사 속에 파묻힌 채 잊혀진 뛰어난 여성들의 흔적들이 간간이 유적지에서 발견되는 유물처럼 고개를 내미는 경우가 있다. 성서의 여인들 가운데에서도 한 시대에 큰 획을 긋고서 성서의 지면을 차지한 뛰어난 남성 못지않게 큰 족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성서 뒤로 총총히 사라진 여인들이 많았을 성 싶다. 아니면 스쳐 지나갈 듯 희미한 실루엣만을 성서 지면에 남긴 채 황망히 잊혀진 여성들도 있을 것이다. 구약의 훌다가 그런 여인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2700년 전 요시야가 8세의 어린 나이에 남왕국 유다의 왕으로 등극하였다. 요시야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한 그의 조부 므낫세 왕이나 아버지 아몬 왕과는 달리 야훼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여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아니한 왕이었다. 재위 18년에 요시야는 서기관 사반을 보내어 성전을 수리케 하였다. 그때 성전 구석 어디엔가 먼지로 뒤덮인 채 박혀있던 율법책이 대제사장 힐기야에 의해 발견되었다. 힐기야는 그 책을 사반을 통해 요시야 왕에게 보내었고 그렇게 하여 그 책의 내용이 공개되었다. 사반이 그 책을 읽을 때 요시야는 유다의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의 경고를 듣고서 옷을 찢으며 고통스러워하였다 한다. 조부 므낫세 통치 55년 아버지 아몬 통치 2년 성전 수리하다가 율법책이 발견되기까지 걸린 18년을 합하면 자그마치 75년 동안 하나님의 뜻을 기록해 놓은 율법책은 철저히 잊혀진 유물 취급받은 것이다. 그 기간은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은 채 불순종으로 일관한 영적인 암흑기였으리라. 율법책을 받아든 요시야 왕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 책의 내용이 여전히 유효한 하나님의 말씀인지와 아직도 유다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여지가 남아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하였다. 요시야는 이를 위해 당시 정치와 종교의 최고위급 관료로 구성된 다섯 사람을 선출하였고 이들로 구성된 대표단은 왕의 질문과 함께 여선지자 훌다를 찾게 되었다. 그들은 왜 여선지자 훌다를 찾았는가? 훌다는 한 가정의 평범한 아내였다. 그녀의 남편 살룸은 제사장이나 레위인의 예복을 주관하던 사람이었다. 제사의식에 필요한 예복을 만드는 것은 정확하고 섬세한 여성의 손길을 요하는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남편을 도와 예복을 바르게 만들기 위해서는 매뉴얼에 해당되는 율법책을 날마다 세심히 읽으면서 그것을 제작해야 했기에 하나님의 율법책에 관한한 훌다는 당대의 최고권위자가 아니었겠는가? 그녀의 일상생활이 일터였고 율법을 탐구하던 연구실이었다. '훌다'라는 히브리어 이름의 뜻인 '두더지'와 관련하여 생각해 본다면 그녀는 땅을 파는 두더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있게 파고들어가 연구한 학자이자 여선지자였던 셈이다. 자신을 찾아온 그들에게 훌다는 침착하고도 위임 있게 율법책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이러한 훌다의 선포는 요시야 왕이 주도한 종교개혁의 기폭제가 되었으니 그녀를 '종교개혁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로 인해 다가올 진노의 재앙은 회개한 유다 땅에서 요시야의 재임 기간 동안 물러가게 되었으니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선 한 여인이 국가를 위기로부터 구한 것이다.

2011-03-29

[성서인물열전] 네피림, 인간 역사의 호전적 난봉꾼

신화와 소설과 영화 속 단골 소재 가운데 하나가 기골 장대한 거인들의 이야기이다. 소설 지면과 영화 화면이 꽉 찰 정도로 골격이 우람하고 장대한 그들의 등장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기를 질리게 한다.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하는 대인국의 거인들은 보통 사람 걸리버를 장난감 다루듯 하는데 그들의 키는 걸리버보다 자그마치 12배나 더 큰 것으로 묘사된다. 대략 18~20미터에 이르는 신장이다. 메소포타미아 서사시인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인공인 길가메시는 약 5미터의 거인으로 소개되고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도 무수한 신들과 거인족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대지의 신 가이아(Gaea)와 하늘의 신 우라노스(Ouranos)가 결혼하여 12명의 아들을 낳는데 이들이 타이탄(Titan)이다. 이 단어는 '거인'을 뜻하는 대명사로 사용되었고 '타이태닉(Titanic)'이라는 단어도 여기서 파생되었다. 이들 가운데 대표적인 거인으로는 외눈박이 거인 키클롭스(Cyclops)와 가이아의 자식들을 뜻하는 기간테스(Gigantes)가 있다. 이러한 소설과 영화 속 거인들의 이야기는 가십거리로 사라지지 않은 채 현실세계에서도 우리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현재까지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 거인 화석들과 유골들과 관련하여 제기되고 있는 거인족의 존재 여부를 둘러싼 진실공방은 계속되고 있다. 구약성서 또한 이러한 거인족들의 자취를 소개하고 있다. 노아 홍수 이전 거인들인 네피림(Nephilim)과 노아 홍수 이후의 거인들인 아나킴(Anakim)과 블레셋 가드의 거인족들이 그들이다. 홍수 이후의 거인족에 속하는 최후의 르바임 족속인 바산 왕 옥(Og)은 거대한 신장의 소유자였는데 약 5미터에 이르렀다 전한다. 이들 르바임 족속을 암몬 족속은 '삼숨밈'('악한 계획을 꾸미는 자')으로 모압 족속은 '에밈'('공포를 유발케 하는 자')으로 불렀다 한다. 아마도 그들을 본 자들은 그들의 장대함이 주는 공포심 때문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으리라.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의 정복을 앞두고 그 땅을 탐지하기 위하여 보낸 정탐꾼들의 단편적 보고를 기록해 놓고 있다. 그들에 의하면 그곳에 거주하고 있던 기골이 장대한 아낙 자손들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거기서 네피림 후손인 아낙 자손의 거인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다윗이 던진 물맷돌에 맞고 쓰러진 블레셋 가드 출신 골리앗도 아낙 자손들에 비해 다소 왜소하지만 신장이 약 2.9미터였던 거인이었다. 성서는 네피림을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사이에서 태어난 후손 또는 거인족이라 하였다.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창세기는 이들을 소개한 후 곧 세상에 만연한 사람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홍수로 지면을 쓸어버리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중을 전하고 있다. '네피림'은 어원적으로 '타락한 자들' '폭군' '장부'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아마도 신체가 큰 호전적인 난봉꾼으로서 다른 연약한 사람들을 괴롭혔던 망나니와 같은 이들을 일컫는 말이겠다. 그들의 존재와 행태는 당시의 무분별한 성적 결합과 심각한 타락상의 한 단면을 제시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단절될 때마다 네피림과 같은 괴물은 여러 모양과 방식으로 역사에 등장할 수 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아니겠는가?

2011-03-15

[성서인물열전] 아비가일, 지혜로운 언행으로 집안을 구한 여인

'금슬상화(琴瑟相和)'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거문고와 비파의 조화로운 음률'처럼 서로 화합하는 부부관계를 뜻하는 말이다. 구약성서는 '미녀와 야수'처럼 가장 어울리지 않지만 한쪽의 결점을 너무나 잘 보완해 주었던 한 부부를 소개하고 있다. 총명하고 아름다운 용모를 지닌 아내를 둔 어리석고 인색하고 악한 사내의 이름은 나발이다. '어리석다'라는 이름의 뜻처럼 나발은 자신의 무지와 우매함 때문에 자신의 일가를 쑥대밭으로 만들 뻔하였다. 이러한 위기의 상황에서 지혜롭게 처신하여 집안에 미칠 화를 거둔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는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이었다. 나발과 아비가일 부부가 다윗과 관련을 맺은 사건은 이러하다. 사울에게 쫓겨 도망자 신분이 된 다윗은 양 삼천과 염소 일천을 둔 소위 알부자인 나발이 양의 털을 깎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양털을 깎는 그날은 동네 축제마당이 벌어지는 날로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는 전통이 있었다. 궁핍한 상황에 처한 다윗은 자신의 부하들을 나발에게 보내어 예의를 갖추어 정중하게 도움을 청하였다. 그러나 나발은 아주 매몰차게 거절하였다.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나발이 국가적 스타덤에 오른 다윗을 모를 리 없을 터. 나발은 다윗을 사울의 종으로 있다가 반역하여 도망 친 노예들의 두목 정도로 치부하면서 빈정대듯 다윗의 부하들에게 만용을 부렸다. 나발의 경멸적인 말을 전해들은 다윗은 격노하였다. 다윗을 분노케 한 것은 곤핍한 형제들을 돌보지 아니하는 나발의 비인간적인 작태 때문이었다. 고대사회는 '접대' 혹은 '친절을 베푸는 것'을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다. 나발이 그런 기본적인 덕목조차 조롱거리 삼자 다윗은 사백 명을 무장시켜 그를 치러 나갔다. 그러한 일촉즉발의 위기의 순간에 나발은 잔치의 여흥과 술에 취해 다윗의 칼이 자신의 목을 치리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자신의 집안에 미칠 심각한 위기를 종으로부터 전해들은 아비가일은 기지를 발휘해 남편 몰래 먹거리와 예물을 풍족히 준비하여 다윗에게로 급히 나아갔다. 그리고는 아비가일은 자신을 종으로 자처하면서 남편의 미련한 처신에 대해 다윗에게 용서를 구하였다. 나아가 앞으로 이스라엘 왕이 되어 위대한 일을 할 사람이 이런 일로 사람을 죽여 오점을 남기지 말라는 조언까지 하였으니 겸손과 지혜뿐만 아니라 용기까지 갖춘 여인이 아니겠는가? 그 다음날 숙취에서 깨어난 나발은 아비가일로부터 그간의 자초지종을 듣고서 육신이 돌같이 굳어지게 되었고 그로부터 약 열흘 후 그는 죽고 말았다. 하나님의 징계였다. 인격이란 구조물을 바르게 세우기도 처참히 파괴하기도 하는 것이 세치 혀가 아니던가? 지혜자는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지혜 있는 자의 혀는 지식을 선히 베풀고 미련한 자의 입은 미련한 것을 쏟느니라."

2011-03-08

[성서인물열전] 멜기세덱, 여백 많은 수묵화 같은 인물

성서에서 가장 신비에 싸여있는 인물이 있다. 그는 이 세상과의 인연을 초월한 듯 부모와 족보에 관한 기본적 정보나 출생과 죽음에 관한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구약성서의 한 시대를 장식했던 인물이었다. 그의 이름은 성서에서 딱 세 번만 언급되는데 그 횟수에 비해 그의 존재감은 음악으로 치자면 '스타카토'처럼 강한 반절의 리듬과도 같은 족적과 함께 나머지 반절의 묘한 단절된 여운을 남긴 채 역사의 뒤안길로 총총히 사라진 인물이었다. 신약성서는 그를 두고서 "아버지도 없고 어머니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의 이름은 멜기세덱이다. 멜기세덱의 이력이 특이한데 그는 제사장이면서 살렘 왕이었다. 그의 이름 '멜기세덱'은 '의로운 왕'을 뜻하고 '살렘'은 '평화'를 의미하기에 그는 의와 평강의 왕인 셈이다. 멜기세덱은 속죄를 위해 제사를 드리는 중보자인 제사장이었고 의에 기초하여 질서를 세우고 평화를 가져올 왕이었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과 관련된 이야기에서 홀연히 등장한다. 어느 날 아브라함은 인근 왕들이 조카 롯을 사로잡아갔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롯과 빼앗긴 재물을 되찾기 위해 그들과 벌인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여러 왕들이 마중 나왔는데 그중의 한 사람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와서 아브라함을 축복하면서 하나님을 찬송하였으니 그가 멜기세덱이었다. 아브라함은 그 전쟁에서 노획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다. 이 사건이 의미하는 바는 자못 크다. 멜기세덱은 초대 제사장인 아론이 이스라엘 역사에 등장하기 전 대략 600년 앞서 모든 민족을 위한 대제사장이었던 셈이다. 더군다나 왕권과 제사장직을 엄히 구분한 이스라엘 왕국 시대 그 이전에 그 두 직책을 함께 수행한 멜기세덱의 행보는 무척 흥미롭다. 이러한 멜기세덱의 특이한 이력과 행보는 신약성서에서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비추는 모형으로 소개된다. 예수님은 시종이 묘연한 멜기세덱처럼 시작과 끝도 없는 대제사장으로서 하늘과 땅을 매개하기 위해 그 자신을 희생 제물로 바친 아이러니의 주인공이셨다. 신약성서의 히브리서 기자는 멜기세덱의 행적 속에 드리운 예수님 생애의 그림자를 한편의 묵직한 선으로 처리된 '수묵화'로 표현한 셈이다. 그러기에 붓이 가지 않은 여백에서 우리는 믿음으로 메워야 할 아이러니와 역설로 가득한 신비를 발견한다.

2011-03-01

[성서인물열전] 에스겔, 킬링필드에서 구원을 노래한 예언자

킬링필드(Killing Fields). '붉은 캄보디아 민족'을 뜻하는 쿠메르루즈(Khmer Rouge) 공산 정권 때 악명 높은 대학살의 참극이 빚은 집단 무덤의 현장을 일컫는 말이다. 그때 800만 명의 인구 가운데 무려 200만 명이나 되는 캄보디아 인민들이 무참히 잔혹하게 살해되었다. 그러한 킬링필드는 캄보디아 전역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500개를 훌쩍 넘는다고 한다. 인간 역사상 이런 비극이 또 있을까? 인간 내면에 깊이 도사린 악마적 야만과 광기가 할퀴고 간 현대사의 끔찍한 현장이다. 구약성서의 제사장이자 예언자였던 에스겔 또한 우리를 이러한 '킬링필드'로 안내한다. 그러나 에스겔이 환상 중에 본 킬링필드는 캄보디아의 그 현장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에스겔은 '마른 뼈들의 환상'을 통해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민족의 혼을 일깨워 주고 희망을 심어 주려 하였다. 어느 날 하나님은 환상 중에 에스겔을 한 골짜기로 데리고 가셨다. 그 골짜기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의 마른 뼈와 해골이 널브러져 있는 킬링필드였다. 그 킬링필드는 강대국 바빌로니아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끌려가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의 절망을 가리킨다. 절망은 자기상실이 가져온 정신적 죽음이 아니던가? 그러기에 덴마크 출신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하였다. 자신의 삶의 뿌리가 송두리째 뽑혀 타국으로 강제로 옮겨져 그곳에서 종살이하던 그들은 삶의 생기와 희망이 고갈된 마른 뼈들과도 같았다. 환상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흩어져 나뒹굴던 뼈와 뼈가 상합하고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그 위에 가죽이 덮였고 마침내 하나님의 명령으로 사방에서 불어온 생기가 들어가 하나씩 일어서는 게 아닌가? 그리고 큰 군대를 이루었다. 에스겔은 이 환상을 통해 외세의 압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민족을 이루게 되리라는 희망을 확신하게 되었다. 그는 세계의 패권을 거머쥔 강대국 바빌로니아의 식민지 백성으로 전락한 후 보다 큰 영적 침체를 맞이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의 메신저가 되었다. 절망적 상황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마른 뼈와 해골들이 가득한 킬링필드 앞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물으신다.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이것은 '불가능한 가능성'이다. 그 가능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생기가 마른 뼈들에 들어가는 순간 죽음은 물러가고 생명이 춤춘다. 이스라엘 민족이 절망의 바닥을 치고 희망과 회복을 향해 올라가는 순간이다.

2011-02-22

[성서인물열전] 하갈, 한 민족의 어미가 된 씨받이 여인

조선시대 여성들은 혼인과 함께 아들을 낳아야 하는 의무가 주어졌다. 가문의 대를 이을 손자를 낳지 못하는 것은 칠거지악(七去之惡) 가운데 하나로 여길 정도로 여성들에게 덧씌우진 굴레였다.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성은 친정으로 쫓겨 가기 일쑤였다. 그러나 양반 집에서는 혼인한 여성을 내쫓는 것 또한 집안의 수치로 여겨 다른 방도를 찾았으니 그것이 악습 중의 악습이었던 '씨받이'였다. 천한 신분 중에서 아들을 낳은 경험이 있는 과부나 젊은 처녀들이 어떤 대가를 받고서 씨받이가 되었다. 현대에 와서 다른 사람의 정자와 난자를 자신의 자궁에 착상시켜 대신 임신하고 아이를 낳아주는 역할을 하는 대리모는 조선시대 씨받이의 변형이 아니겠는가? 구약성서에서도 씨받이가 된 한 여인의 이야기가 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그토록 열망했던 임신이 되지 않자 자신의 이집트 출신 몸종인 하갈로 하여금 아브라함과 동침케 하였다. 이것은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하겠다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가 지연되자 조바심 난 사라의 당돌한 저항의 몸짓일터. 사라는 하갈을 통해 아브라함이 자식을 얻게 되면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이 감당치 못할 무리수를 던졌다. 아브라함과 동침한 하갈은 덜컥 임신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시기와 질투의 화신이 된 사라는 하갈의 임신을 반기기는커녕 그녀를 학대하기 시작하였다. 급기야 신변의 위협을 느낀 하갈은 임신한 채 광야로 도망가게 되었다. 광야에서 홀몸이 아닌 여인을 치한이나 맹수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천사가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하염없이 울고 있는 하갈에게 나타나 여주인에게 다시 돌아가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과 유사한 약속의 말씀을 주신다.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네가 잉태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어쩌면 여주인 사라에게 돌아가는 하갈의 길은 죽을 각오로 가는 길이었다. 도망간 노예를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 그러나 하갈이 여주인에게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광야에서 고통 중에 만난 하나님의 체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갈은 그런 하나님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무명의 씨받이 여인이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하갈이 한 큰 민족을 이룰 생명의 씨앗을 품은 어미가 되는 순간이다.

2011-02-15

[성서인물열전] 요나단, 피보다 진한 우정을 나눈 왕자

요즘 같은 인스턴트 시대에 오랫동안 가까운 사이를 뜻하는 '친구(親舊)'라는 단어처럼 그 의미가 퇴색한 말도 없을 것이다. 이해관계로 얽히고 설킨 현대사회에서 친구란 하나의 상징어에 불과졌다는 생각마저 든다. 관중과 포숙처럼 서로 이해하고 알아주는 관계를 뜻하는 '관포지교(管鮑之交)'와 친구를 위해서라면 목이라도 내놓는다는 '문경지교(刎頸之交)'라는 사자성어 그대로 피보다 진한 우정을 나눈 성서의 인물들이 있다. 다윗과 요나단이 그들이다. 요나단은 이스라엘 초대 왕인 사울의 장남으로 장차 사울의 뒤를 이어 차세대 권력을 이어받을 왕위 계승자였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가장 강력한 숙적이었던 블레셋의 군대장관 골리앗에게 물맷돌을 날려 그를 쓰러뜨린 후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 이후 이스라엘 여인들이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며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한다.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은 자신의 아버지보다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던 다윗을 경계하여 그를 제거하려 하기보다는 성령을 통해서 다윗의 마음과 연락되었다. 그렇다 다윗을 향한 요나단의 마음은 일편단심이었다. 아버지 사울이 눈엣가시와 같은 다윗을 제거하려 여러 번 시도하였지만 그때마다 요나단은 아버지의 잘못을 눈물로 간하였고 다윗이 사울의 칼끝을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다윗은 자신을 향한 요나단의 사랑을 다음과 같은 노래로 고백하였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더하였도다."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은 여인의 사랑에 비할 바 아니었고 자기 생명보다 더한 사랑이었다. 피로 맺어진 골육지정보다 더 끈끈한 사랑이 아니던가? 요나단은 하늘이 내린 예지를 통해 아버지 사울의 시대가 종결될 것을 알고서 다윗이 왕위에 오를 때 자신의 가문을 선대해 줄 것을 부탁하였다. 나아가 그는 "여호와께서 다윗의 대적을 치실지어다"라고 예언하였다. '혈연'보다도 하늘의 뜻을 따라 기꺼이 이인자가 되고자 한 요나단이었다. 대권을 앞에 놓고서 순천명(順天命)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요나단은 블레셋과 전쟁을 치룬 길보아산 전투에서 아버지 사울과 장렬하게 전사하였다. 인간사 속에서 권력에 눈 먼 이들이 우정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서 적으로 돌변한 일들이 얼마나 많던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뜻 위에 세운 진정한 공로자는 피보다 진한 우정과 순천명의 미덕으로 한결같이 다윗을 사랑한 요나단이 아니겠는가?

2011-02-08

[성서인물열전] 아비멜렉, 스스로 왕이 된 인두겁 쓴 사사

씨 뿌려 심은 대로 거둔다. 아비멜렉의 경우가 그렇다. 이스라엘의 유명한 사사였던 기드온은 많은 아내를 거느려 슬하에 아들만 70명을 낳았고 그리고 세겜에 있는 첩 사이에 난 아들 하나를 두었다. 첩에게서 난 아들이 아비멜렉이었는데 첩으로 살아간 어머니의 한(恨) 가운데 서자로 자란 설움 때문이었는지 성격이 심히 모나고 사나웠던 모양이다. 아버지가 죽고 난 후 아비멜렉은 왕이 되고자 어머니의 고향인 세겜에 가서 혈연에 호소한다. "당신들과 나는 한 골육이 아니오. 그러니 당신들은 아버지가 낳은 70명의 아들들의 통치를 받겠소 아니면 나 한 사람의 통치를 받겠소."라며 외척을 부추기었다. 결국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의 말에 놀아나 그를 왕으로 추대하였고 그는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70명의 이복형제를 한 바위 위에서 무참히 살해하였다. 백주대로에 순식간에 일어난 살풍경한 장면에서 모골이 송연해질 뿐이다. 그때 70형제 가운데 가까스로 살아남은 막내 요담이 어느 날 그리심 산에 올라가 세겜 사람들을 향해 그 유명한 나무 우화로 그들을 크게 꾸짖었다. 내용인즉 이러하다. "나무들이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에게 차례로 왕이 되어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그 나무들은 한결같이 자기에게 맡겨진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섬기기를 원해 다른 나무들 위에 군림하기를 거부한다. 허나 불쏘시개 외에는 쓸모없는 가시나무가 다른 나무들을 위협하여 왕이 되겠다고 한다." 결국 가시나무는 저들의 왕이 되었는데 서로가 서로를 불살라 태워 죽이는 비극으로 그치고 말았다는 우화였다. 이 우화를 마친 후 요담은 "너희가 아비멜렉을 세워 왕을 삼았으나 너희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이것이 여룹바알(기드온)과 그 집을 선대함이냐 이것이 그 행한 대로 그에게 보답함이냐."고 세겜 백성들이 자행한 불의를 엄히 고발하였다. 더군다나 요담은 그 비유에서 뿌리 내리고 서있는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 '나무'일진대 농부이신 하나님을 제쳐 놓고 왕이 되겠다고 하는 나무로서의 그 존재 이유와 근본을 망각한 가시나무의 말로(末路)를 예언하듯 설파하였다. 첫 단추부터 잘못 낀 세도가 오래갈 수 없는 법이다.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삼 년에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에게서 등을 돌렸고 결국 아비멜렉은 한 여인이 던진 맷돌짝에 맞아 두개골이 터져 죽고 말았다. 뿌리 잃은 가시나무의 종국이다.

2011-02-01

[성서인물열전] 헤로디아, 비정한 권력의 칼을 든 여인

예나 지금이나 지중해를 끼고 있는 지역의 문화는 '수치와 명예'의 문화였다. 집안이나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가족 구성원들에 의해 살해당하는 일은 지금도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수치와 명예'는 그 지역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렌즈이자 코드인 셈이다. 신약성서의 각 장을 장식하는 수많은 설전도 형이 죽고 난 후 아래 형제가 그 형수를 아내로 맞이하는 시형제 결혼법도 이러한 수치와 명예의 문화와 맞물려 있다 하겠다.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수치를 당한 후 마음속으로 비수를 갈다가 결국 그의 목을 친 비정한 여인이 있었다. 헤롯 안디바의 아내였던 헤로디아가 그 주인공이다. 헤롯 안디바는 헤롯 대왕의 아들로서 갈릴리 지역을 다스리던 분봉왕이었다. 다른 아들들에 비해 아버지 헤롯을 빼다 박은 그는 로마 당국의 비위를 적절히 맞추어가면서 정치를 그럭저럭 잘 해나갔다. 그는 갈릴리 서안에 로마 황제 디베료의 이름을 본 따 디베랴라는 신도시를 건설하기도 하였다. 헤롯 안디바는 재임 초기에 나바테안 왕 아레타스의 딸과 혼인하여 20년 넘게 결혼생활을 하다가 이복형인 아리스토불루스의 딸이요 이복동생 (분봉왕 헤롯 빌립과는 다른) 헤롯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에게 반하여 그녀를 빼앗아 아내 삼아버렸다. 당시 헤롯 안디바와 헤로디아의 애정 행각이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로 가십거리가 된 모양이었다. 이 잘못된 결혼을 강한 어조로 여러 차례 비판한 이가 있었으니 그가 세례자 요한이었다. 군중들의 여론을 두려워한 나머지 헤롯 안디바는 세례자 요한을 처형하지 못하고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 헤로디아는 헤롯 안디바의 생일 연회가 있는 날 세례자 요한의 목을 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 연회가 무르익어 갈 즈음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난 딸인 살로메가 매혹적인 춤으로 좌중을 사로잡았다. 취기와 기쁨으로 한껏 고조된 헤롯 안디바는 살로메에게 소원을 말하면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맹세하였다. 귓속말로 헤로디아와 속삭였던 살로메는 헤롯 안디바에게 세례자 요한의 목을 요구하였고 그것도 참수 후 쟁반에 담아 연회장에 모인 모든 무리들 앞에 가져오라는 것이 아닌가. 자신이 한 말을 돌이킬 수 없음을 안 헤롯 안디바는 그렇게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하여 비정한 한 여인이 휘두른 권력의 칼에 여인이 낳은 자 중 가장 위대한 인물이 스러졌다.

2011-01-25

[성서인물열전] 하박국, 하늘향해 항변하는 선지자

구약시대에 하늘을 향해 소리를 내지른 이가 있었다. 깊은 시름 속에서 터져 나온 한숨 섞인 무언의 항변인지 아니면 분노에 차 냅다 지른 외마디 소리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외침은 분명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외침은 이유 있는 항변이었다. 아니 항변이라기보다는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질문이었다. 그의 질문은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질문은 "왜 악인이 득세하며 의인이 핍박을 당합니까?"이고 두 번째 질문은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이러한 고뇌에 찬 질문을 한 이는 분열왕국 시대를 살았던 선지자 하박국이다. 하박국은 악하고 부패한 시대 속에서 정오의 해처럼 더욱 빛나야 할 하나님의 정의는 어디 있느냐고 묻고 있다. '인과응보'와 '권선징악'은 유대인들이 선조적부터 간직해 온 그들의 고유한 신학이었다. 그러나 그가 바라본 세상은 악과 불의와 폭력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고 악인은 기세등등하고 의인은 오히려 푸대접과 모진 시련을 당하고 있으니 세상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 많은 시련이 엄습하는 현실을 목도하는 선지자의 마음에는 좌절과 분노가 교차한다. 하박국은 심히 타락한 유대 사회를 왜 그냥 두시냐고 하나님께 탄원한다. 그의 탄원을 들으신 하나님은 당시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던 바벨론을 채찍 삼아 남 유다를 심판하시겠다고 하셨다. 하박국은 억장이 더 무너지듯 왜 하필이면 바벨론이냐고 응수한다. 하박국 편에서 자기 백성을 벌하시기 위하여 그들보다 더 악한 바벨론을 사용하시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공의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아무리 악과 불의가 판치는 세상이라 하여 그것에 편승하여 살 수 없는 법. 이러한 불법이 판치는 세상에서 하나님과 그분이 실행하실 공의를 신뢰하는 것이 제대로 된 믿음이 아닌가? 결국 강하고 질긴 악의 원심력에 끌려 바깥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의 원심력이 강해져야 된다. 하나님은 때로 불의가 판치는 세상 한복판에서 부리까지 까만 까마귀들의 텃밭 속에서도 백로로 살아가는 법을 우리가 배우기를 원하신다. 녹록찮은 세상을 넉넉하게 이기는 신앙의 뱃심이 그저 주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2011-01-18

[성서인물열전] 벨 사살, 하나님의 수평 저울에 달린 자

법과 정의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여러 나라의 법원 앞에 세워져 있는 동상이 있다. 바로 디케 여신상이다. 디케는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와 법과 예언의 여신 테미스 사이에서 태어난 정의의 여신이다. 디케는 한 손에는 수평 저울을 다른 손에는 칼을 들었으며 두 눈은 두건으로 가리고 있다. 수평 저울은 불편부당한 공정성을 칼은 법의 엄중한 집행을 눈가리개는 법의 해석과 적용에 편견과 선입견이 개입될 수 없음을 각각 상징하고 있다.디케는 인간들이 살상무기로 서로 싸우고 죽이는 타락의 길을 걷자 더 이상 인간들의 땅에 머무를 수 없어 손에 저울을 든 채 하늘로 올라가 처녀자리라는 별자리가 되었다 한다. '인간들 속에서'가 아니라 '인간들 위에서' 정의를 선포하기 위해서이다. 상징이지만 하나님도 손에 그 수평 저울을 들고 계시다면? 다니엘서의 기록에 따르면 바빌로니아 왕 벨사살이 큰 연회를 베풀어 이스라엘 성전(솔로몬 성전)에서 탈취한 성전 기명을 귀인들과 왕후들과 왕의 첩들의 술잔으로 사용하였다. 게다가 그는 여러 우상들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였다. 그 때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 편 분벽에 글자를 쓰는데 그 광경을 목격한 벨사살은 낯빛이 창백해지고 무릎이 서로 부딪힐 정도로 심히 두려워 떨었다 한다. 그 손가락이 벽에 남긴 글자는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었는데 다니엘의 풀이에 의하면 '메네'는 '세다' '데겔'은 '저울에 달렸다' '우바르신'은 '뺏으신다'는 뜻이다.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어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고 결국 그의 왕국이 빼앗길 것이라는 엄중한 심판의 메시지였다. 바로 연회가 배설된 그날 밤 페르시아 다리오 왕의 군대에게 벨사살은 죽임을 당하였다. 화려한 대리석 궁전이 순식간에 핏빛으로 물든 비극의 자리가 되었고 흥겹던 노래 소리는 칼부림과 비명 소리로 순식간에 변했다. 그의 죄로 인하여 벨사살은 하나님의 수평 저울에 달렸고 그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고 말았다. 그 결과는 파멸과 죽음을 초래한 심판의 칼이었다. 이렇듯 하나님은 우리의 언행을 그분의 저울에 다신다.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사무엘상 2:3)

2011-01-11

[성서인물열전] 한나, 기도로 태문을 연 여인

불임녀 여인을 구약성서에서는 '돌계집' 즉 '석녀'라 하였다. 고대 농경사회에서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은 그 집안의 대가 끊어지는 것이고 노동력의 상실을 의미했다. 이렇듯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여인은 남존여비와 일부다처가 성행했던 고대사회에서 온갖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구약성서에서 일종의 저주로 비친 불임의 난관을 야훼 하나님의 은혜로 극복하고서 아이를 낳은 여인이 여럿 있다. 사라와 라헬이 그들이다.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암울했던 사사시대 말기 또 한 명의 여인이 불임의 고통으로 인해 성소에 엎드려 기도하고 있었다. 그 여인은 '은혜 또는 은총'이란 이름의 뜻을 지닌 한나였다. 한나는 경건한 레위인 엘가나의 두 아내 가운데 첫 번째 아내요 정실(正室)이었다. 그러나 한나에게는 그 마음을 짓누르는 큰 슬픔이 있었으니 그것은 오랫동안 '불임녀'로 살아온 그녀의 이력이었다. 생물학적 불임은 고대 유대사회에서는 사회적 혹은 종교적 저주나 재앙의 결과로 여겼기에 한나가 경험한 고통은 현대 여인들이 겪는 불임의 고통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아마도 남편 엘가나가 한나의 불임으로 인해 대를 이을 아들을 얻기 위해 한나의 동의를 얻어 취한 두 번째 아내가 브닌나가 아닌가 싶다. 불임의 고통에 처한 한나를 더욱 괴롭게 한 것은 심술 사나운 브닌나의 끊임없는 시기와 질투였다. 대를 이을 아이를 낳지 못하는 한나를 엘가나는 질타치 않고 오히려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뇨"라고 말하면서 위로하였으니 아이를 낳은 브닌나는 약오르다 못 해 한나를 시도 때도 없이 괴롭히기 시작하였다. 한 남자의 첩이라고 하는 자신의 열등한 신분에 남편의 사랑까지 빼앗긴 나머지 질투에 눈 먼 브닌나는 한 집안의 또 다른 여인 한나의 아픔을 헤아리기는커녕 원수 삼아 한풀이를 하고 있었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 가운데 성품이 온유한 여인이었던 한나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성소에 엎드려 눈물로 기도하는 일이었다. 한나의 나지막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눈물 섞인 애절한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 되었고 때가 되어 하나님은 그녀의 태문을 열어 주셨다. 그렇게 태어난 아들이 혼란한 사사시대를 종결짓고 이스라엘 왕국의 기초를 놓은 사사이자 선지자였던 사무엘이었으니 한나는 오랜 인고의 기도 끝에 걸출한 인물을 낳은 여인이 되었다.

2011-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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